PC 엔진 (PC Engine)

닌텐도 제국을 흔든 백색의 혁명가, CD-ROM 게임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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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솔 소개

1987년 10월 30일, 일본의 가전업체 NEC와 게임 개발사 허드슨(Hudson Soft)이 합작하여 내놓은 'PC 엔진(PC Engine)'은 닌텐도의 패미컴이 독점하고 있던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크기의 작고 하얀 본체와 신용카드만 한 두께의 '휴카드(HuCARD)'는 PC 엔진의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비록 CPU는 8비트(HuC6280)를 사용했지만, 그래픽 처리 장치(VDC)는 16비트급 성능을 발휘하여 동시 발색 수와 스프라이트 처리 능력에서 패미컴을 압도했습니다. 이는 오락실 게임들을 거의 완벽하게 이식할 수 있게 해주었고, 아케이드 게이머들을 열광시켰습니다.

PC 엔진이 게임 역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바로 세계 최초로 CD-ROM을 게임 매체로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1988년 발매된 주변기기 'CD-ROM²'은 기존 롬 팩(수 킬로바이트 ~ 수 메가바이트)과는 비교할 수 없는 540MB라는 대용량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게임 캐릭터가 실제 사람의 목소리로 연기하고(음성 지원), 오케스트라 수준의 고음질 BGM이 흘러나오며, 애니메이션 동영상이 재생되는 '멀티미디어 게임' 시대를 닌텐도나 세가보다 몇 년이나 앞서 열젖힌 사건이었습니다. '이스 I & II', '천외마경' 같은 대작 RPG들이 CD-ROM의 힘을 입어 탄생했고, 이는 PC 엔진이 일본 시장에서 한때 패미컴의 판매량을 위협하고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를 2위 자리에서 밀어내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PC 엔진은 '파생 모델의 제왕'이기도 했습니다. 초기 하얀색 모델뿐만 아니라, 그래픽 칩을 강화한 '슈퍼그래픽스', CD-ROM² 시스템을 일체형으로 만든 '본체 듀오(Duo)', 휴대용으로 만든 'PC 엔진 GT', 그리고 셔틀 우주선 모양의 저가형 모델 '셔틀'까지 수십 종의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습니다. 특히 'PC 엔진 GT'는 당시로서는 꿈의 기기였던 컬러 휴대용 게임기이자 TV 튜너까지 장착할 수 있는 럭셔리 아이템이었습니다.

북미 시장에서는 'TurboGrafx-16(터보그래픽스-16)'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으나 디자인 변경과 마케팅 실패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수 시장에서는 닌텐도의 슈퍼 패미컴과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 사이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며 롱런했습니다. 특히 '미소녀 게임'이나 '슈팅 게임' 장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라인업을 자랑했습니다. 남코, 코나미, 타이토 등 기라성 같은 아케이드 제작사들이 PC 엔진 진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덕분이었습니다.

1994년 차세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32비트 후속기인 'PC-FX'가 실패하며 NEC는 게임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PC 엔진이 보여준 'CD-ROM 게임'의 비전은 이후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으로 이어지며 대용량 게임 시대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작지만 강했던, 그리고 시대를 앞서갔던 하얀색 엔진의 엔진음은 지금도 올드 게이머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기본 정보

  • 제조사: NEC 홈 일렉트로닉스 / 허드슨 소프트
  • 출시일: 1987년 10월 30일 (일본), 1989년 8월 29일 (북미)
  • CPU: 7.16 MHz HuC6280 (8-bit 커스텀 6502)
  • 그래픽: 16-bit VDC (최대 512색 중 482색 동시 발색 / 해상도 가변)
  • 메모리: 8KB RAM + 64KB VRAM (CD-ROM² 시스템은 추가 64KB~2MB)
  • 저장 매체: HuCARD (최대 20Mbit), CD-ROM (540MB)
  • 주요 모델: 코어 그래픽스, 슈퍼 그래픽스, 듀오, GT 등
  • 최다 판매 게임: 천외마경 II: 卍MARU (추정), 이스 I & II
  • 총 판매량: 약 1,000만 대 (전 세계)

역사적 타임라인

1987년 10월

PC 엔진 발매

패미컴보다 훨씬 뛰어난 그래픽 성능과 컴팩트한 디자인으로 일본 시장에 충격을 주며 등장했습니다. 'THE 쿵푸', '빅토리 런' 등이 런칭 타이틀로 발매되었습니다.

1988년 12월

CD-ROM² 시스템 출시

세계 최초의 가정용 게임기 CD-ROM 드라이브가 발매되었습니다. 59,800엔이라는 고가였지만, '파이팅 스트리트(스트리트 파이터 1)'과 'No.Ri.Ko' 등이 발매되며 차세대 매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1989년 12월

이스 I & II 발매

CD-ROM의 대용량을 활용한 화려한 비주얼 씬, 성우들의 음성 연기, 그리고 CD 음질의 BGM이 어우러진 이스의 이식작은 'PC 엔진 = CD-ROM'이라는 공식을 확립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1991년 9월

PC 엔진 Duo 발매

본체와 CD-ROM 드라이브, 그리고 시스템 카드를 하나로 합친 일체형 모델이 발매되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편의성을 높여 PC 엔진의 중흥기를 이끌었습니다.

1994년

PC-FX 실패와 황혼기

후속기인 32비트 콘솔 PC-FX가 3D 성능 부재와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참패했습니다. PC 엔진은 '아케이드 카드' 등을 통해 수명을 연장하며 1999년까지 신작이 나오는 등 장수했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표 게임

천외마경 II: 卍MARU (1992)

PC 엔진 역사상 최고의 명작 RPG. 방대한 시나리오와 풀 보이스에 가까운 음성 지원, 애니메이션 연출은 당시 콘솔 RPG의 정점이자 일본식 RPG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스 I & II (Ys I & II, 1989)

팔콤의 액션 RPG를 허드슨이 이식한 작품. CD-ROM 매체의 장점을 완벽하게 활용한 편곡과 연출로 원작을 초월했다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악마성 드라큘라 X: 피의 론도 (1993)

전통 횡스크롤 액션 악마성 시리즈의 최고봉. 분기 시스템과 애니메이션 컷신, CD 음원의 BGM이 어우러져 시리즈 팬들에게 성역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 (1994)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의 금자탑. PC 엔진 슈퍼 CD-ROM²의 용량을 활용하여 히로인들의 음성을 담았고, 숨겨진 요소와 파고들기 요소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R-TYPE I/II (1988)

아케이드 슈팅 게임의 완벽에 가까운 이식. PC 엔진의 스프라이트 처리 능력을 과시하며 슈팅 게임 마니아들을 PC 엔진으로 끌어들인 일등공신입니다.